'유전무죄 무전유죄'(돈이 있는 자는 죄가 없지만 돈이 없는 자는 죄가 된다)

이말은 1988년 교도소를 탈주한 지강헌이 한 말입니다.

지강헌은 절도범이었습니다. 그는 돈 556만원을 훔쳐 징역 17년을 선고 받았고 그는 당연히 죄값이러니하고 교도소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 새마을 사업 비리로 대략 70억원 정도를 횡령했는데도 불구하고 7년의 징역을 선고받았을 뿐만 아니라 2년 3개월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지강헌은 탈출을 결심했고 결국 탈주하여 8일 만에 인질극을 벌였습니다.

지강헌은 “내가 받은 판결은 정치적 요구에 의해 내려진 잘못된 판결이다. 낭만적인 바람막이 하나 없이 이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다” 라고 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토해낸 뒤 깨진 유리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결국 인질이 소리를 질러 경찰이 잠입해 지강헌에게 총 두발을 쏘아 인질극은 막을 내렸고 지강헌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끝내 숨을 거두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강헌이 탈주해 인질극을 벌인 것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 권력의 심장부였던 전두환의 동생이 70억원이라는 돈을 횡령했음에도 고작 556만원을 절도한 지강헌보다 징역형이 너무나 차이가 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80년대의 암흑시대에 있었던 일이었고 하나의 교훈이 될만하지만 21세기라고 하는 현재에도 지강헌이가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것이 성립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로인해 우리는 존경의 대상이 없는 상태로 마치 선장없이 제멋대로 흔들려가는 난파선과 같은 아찔한 사회구조로 변질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즘 삼성이 그렇습니다.

삼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일 뿐만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영향력 또한 대단하기만 합니다.

지난 번에도 밝혔지만 이건희 회장이 여기까지 설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애국심이었고 국민들이 국산품 애용을 적극적으로 한 결과로 엄청난 수혜를 입은 기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태안사태에 대한 삼성의 입장을 보면 대기업답지 않은 옹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검찰은 중간수사발표를 통해 삼성중공업과 유조선 선적사인 홍콩의 '허베이 스피리트 십핑 컴퍼니리미티드' 등 법인 2곳 등이 쌍방과실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삼성중공업과 유조선 양쪽의 과실비율을 명시하기는 어렵다고 밝히면서 결국 보상문제가 상당기간 길어질 전망이라고 합니다.

이런 발표가 나오자 다음 날 삼성은 주요 중앙일간지 광고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태안기름유출사고에 대해 삼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한겨례신문에는 광고를 주지 않은 채...

그러나 아쉽게도 삼성은 뚜렷한 내용도 없는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결국 삼성은 존경의 대상이 아닌 질타의 대상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아래는 삼성이 광고를 통해 내보낸 사과문입니다.

서해북서방 해상에서 저희 해상 크레인이 항해 도중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홍콩 선전 유조선 헤베이스피리트호와 충돌하여 원유가 유출되면서 서해 연안이 크게 오염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큰 충격과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 일로 지역 주민들께서 당하신 고통과 피해,

그리고 생태계 파괴라는 재앙 앞에서는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고 직후 저희들은 현장 방제 활동에 전력을 다해왔습니다. 이제 긴급 방제가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관련 당사자들과 함께 주민 여러분의 생활 터전이 조속히 회복되고

서해 연안의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과 지역 주민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2008. 01. 22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김정환 외 임직원 일동

단 몇 줄의 사과문으로 봉합하려고 했으나 태안주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0만명이라는 자원봉사자들이 생태복원을 위해 기름띠를 제거하며 고통을 함께 나눈 댓가치고는 삼성의 사과는 어이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과문을 발표한 대표를 보면 삼성그룹차원이 아닌 삼성중공업 대표이사와 직원으로 격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삼성 차원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그런데 2년 전 우리는 삼성이 한 일을 알고 있지요.

이건희 회장이 아들인 이재용에게 애버랜드 편법 증여 문제와 함께 불거진 엑스파일 사건 그리고 이건희의 황제 경영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사회공헌기금 8,000억원을 헌납한다고 사흘만에 발표하면서 여론 악화를 봉합시켰음을...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재빠르게 대응한 것과 달리 이번 태안사태에서는 무려 47일만에 대응이지만 너무나 미흡하기만 합니다.

국민이 키운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법대로 하겠다는 듯한 말로 봉합하려고 합니다.

일단 국가에서 지원한 후 구상권을 청구하면 그것을 받아드린 후 보상범위 내에서 해결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지금 태안주민 2명이 살길이 막막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목숨을 끊을 지도 모릅니다.

그저 바다에서 나오는 어류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던 순박한 우리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한 기업의 잘못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선뜻 보상금을 내놓을 통큰 기업이 왜 될 수 없는 걸까요?

자신들의 치부를 막기 위해 8,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내놓는 통큰(?)행보를 한 기업이 생태계를 복원하기까지 10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보면 결국 태안주민들은 10년동안 생계유지를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삼성이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태안 주민들에게 아낌없이 보상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더구나 검찰에서는 애매모호한 수사발표로 인해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는 계속 곤두박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이 위대했던가요?

돈이면 권력도 무릎꿇고 돈 앞에 스스로 무너져야 하나요?

이러한 대한민국의 앞날이 참으로 암담합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 돈에 의해 우리 스스로 존경받을 만한 대상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지금 태안주민들은 하루하루가 막막합니다.

삼성이 해외에서 매출이 높아질 때마다 수십억의 성과금을 임원이나 직원들이 나눠 가질 때 태안주민들은 복창이 터집니다.

삼성은 꼭 알아야 합니다.

그 어렵던 시절에 우리 정부가 국산품 애용을 하자고 할 때 우리 국민들은 기껏이 애용해줬습니다.

삼성을 비롯 당시 기업들의 상품을 우리 국민들은 애용했고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의 기업을 보며 뿌듯해 했습니다.

이제 우리 기업이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을 외면하는 한, 언젠가는 세계로부터 질타와 함께 외면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명박 당선인에게도 말하고 싶습니다.

목포에 있는 대불공단 전봇대로 인해 기업의 차량이 통행을 제대로 못해 기업활동에 지장이 있다고 진노했다고 하죠?

그러자 바로 전봇대가 치워졌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작은 것 하나라도 불편사항을 시정하려는 모습은 칭찬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태안사태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안합니까?

차량이 통행하는데 불편하다는 민원에 대해서는 진노하면서 태안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한 기업에게는 왜 진노를 안합니까?

친기업정책을 하기로 한 마당에 기업의 잘못은 그냥 눈감아주는 것인가요?

지금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귓가에서 울려퍼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