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를 모티브로 하여 잊혀진 도시와 그 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담은 영화 <이리>가 지난 11월 3일 스폰지하우스 중앙에서 언론에 첫 선을 보였다.

<이리>의 언론 시사에는 연출을 맡은 장률 감독과 배우 윤진서가 참석 했고 카메오로 출연하여 배우로써 이 영화에 참여한 부산 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을 비롯, 이창동 감독, 배우 오광록 등 많은 영화인들이 참석하여 <이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얼마 전, 제 3회 로마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CINEMA2008 섹션에 초청 되어 호평을 받고 돌아온 장률 감독과 윤진서는 시사회장을 가득 채운 기자들의 취재 열기를 통해 잊혀진 도시 ‘이리’와 영화에 대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황폐한 현실에 발을 닫고 있지만 그래서 더 뿌리칠 수 없는 시적인 영상미학이 돋보이는 장 률감독의 이번 작품을 감상한 기자들은 “장률 감독의 영화가 더욱 진일보했으며 성숙해졌다”는 중평을 내렸다.

상영 전 무대인사에서 윤진서는 “장률 감독을 만나고 <이리>를 만나면서 배우로써 인간으로써 많이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이 뒤바뀌는 듯한 경험이었다”는 찬사로 <이리> 에 참여하게 된 기쁨을 전했다.

영화 상영 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는 40여분 간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최근 참석한 로마 영화제에 대한 소감과 현지 분위기를 묻는 질문으로 물꼬를 튼 기자간담회 현장에는 실제 익산의 한 매체(익산시민뉴스)에서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잊혀진 ‘이리역 폭발사고’를 영화화한데 대한 익산 시민들의 기대와 흥분을 표출하기도 했다.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 폭발사고 그후 31년...

그 곳의 사람들은 아직 고통 속에 있다!

장률 감독은 ‘이리역 폭발사고’를 영화화한 데 대해 “미디어는 즉효적이라 시의적인 사건을 그저 다루고 말지만, 그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고통은 평생에 걸쳐 지속된다”며 “모르는 도시, 몰랐던 사고라 처음 연출을 결심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익산이 된 그 도시에 직접 가보니 그 고통과 정서가 도시에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영화화를 결심했다.” 고 소감을 전했다.

윤진서 역시 “장률 감독에게 제안을 받기 전에는 ‘이리역 폭발사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있는 사건이라 시대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이리역 폭발사고’에 대한 기억을 전했다. 장률 감독 만의 독특한 연출법, 그리고 한국에서의 첫 작업에 대한 소감 등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진 가운데 <이리>의 첫 공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1977년 11월 11일에 일어난 ‘이리역 폭발사고’ 를 모티브로 31년 만에 우리 앞에 재조명되는 장률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 <이리>는 오는 11월 13일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기자회견장에서의 녹취록

1. 먼저 감독님과 윤진서 씨에게 질문 드립니다.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이리역 폭발사고를 다룬 이 작품을 연출하시게 되었는지, 또 윤진서씨께는 어떻게 이 작품에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윤(윤진서) : 장률 감독님께서 캐스팅껀으로 만나자고 연락을 하셔서 실제로 뵈었는데 너무 좋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아서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에 시나리오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다.

장(장률 감독) : <이리>는 알려진대로 나의 첫 한국에서 연출작인데, 이 작품을 연출하기로 한 데에는 그 무엇보다 한국에서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간절했다.

2. 윤진서 씨에게 질문. <올드보이>로 처음 얼굴을 알렸는데, 선택하는 필모그라피를 보면 어떤 계획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순차적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출연 영화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지?

윤 : 어떤 특정한 이미지메이킹을 위해서 작품을 선택하는 건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 우선 내가 보고 싶은 영화에 내가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에 출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 감성 자체가 비주류의 감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출연하는 영화들에도 그런 색깔이 묻어 나는 것 같다.

<이리> 같은 경우에는 시나리오 자체가 없었기에 캐릭터를 분석하고 내 이미지에 맞출 계산을 할 어떤 도구도 없었다. 그저 감독님께 전해들은 간단한 줄거리가 전부였다. 이리역 폭발사고를 겪은 여자 아이 얘기인데 진서라는 애다. 그 진서가 이리에 남아서 사고 후에도 계속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순전히 감독님 때문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3. 로마 영화제에 참석했는데, 로마 영화제에 참석한 소감?

윤 : 우선 해외 영화제에서 관심을 가지고 초청을 해 준 것이라 너무 감사했다. 프로그래머를 만나서 우리 영화의 어떤 점이 좋았고 왜 이 작품을 초청했는지를 들었는데 “<이리>를 모두 2번을 봤는데 볼 때 마다 눈물이 난다. 너무나 슬픈 드라마” 라는 말을 해줬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로마에 이례적으로 폭우가 쏟아졌다는 점이다. 드레스도 여러 벌 준비해갔었는데, 구시가라 그런지 허벅지까지 물이 차서는 물이 빠지질 않더라. 부스와 레드카펫들이 모두 떠내려갈 정도의 폭우라 대부분의 영화들이 레드카펫 일정이 취소되었다. 나 역시 레드카펫을 밟지 못해 아쉬웠다.

4. 로마영화제에서 <이리>에 대한 평가가 어땠는지?

윤 : 공식 상영 때 프로그래머 분께서 ‘진서’라는 캐릭터의 연기에 어떤 양면적인 것이 느껴졌고 그런 캐릭터를 잘 살려낸 것이 참 좋았다고 평해주었다.

사실 그 양면성이라는 것을 촬영 하면서 많이 고민했었는데, 관객들은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마영화제 쪽에서 그 양면성을 알아봐주어서 감사했고 참 감격스러웠다.

5. 익산에서 온 [익산시민뉴스] 기자 : 이리역 폭발사고를 모티브로 작업을 하셨는데 먼저 감독님께는 어떤 의도로 이리역 폭발사고 사고를 영화화 하게 되었는지,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하다. 윤진서 씨는 그 사고를 겪은 인물로 연기를 하셨는데 실제로 이 사고에 대해 알고 계셨었는지, 촬영을 하는 동안 익산에서 어떤 분위기와 고통을 느꼈었는지?

장 : 제작사에서 찾아와서 이리에 관한 영화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거절을 했다. 왜냐하면 제가 잘 모르는 도시고 전혀 정보가 없었던 낯선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왠지 무슨 ‘사고’라면 관심이 있는 편이다. 어디에서 난 어떤 사고이던 사고가 나면 그 사고를 당한 사람에겐 상처가 평생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것은 세상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런 사고들이 망각되는 시간 또한 빨라진다는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 뉴스 인터뷰 장면을 넣은 것이 그런 대비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기본은 시의성이다.

뉴스는 시의에 맞게 그 사건을 다루는 것이 맞지만 예술은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얼마가 흘렀든 그 상처의 아픔 안에서 온전히 그것을 같이 겪어봐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위로할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익산에 직접 내려가 시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점점 이 도시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빠져들게 되었다.

윤 : 이 영화는 100% 익산에서 모든 촬영이 이뤄졌다. 영화 속 ‘진서’는 도시의 이름이 익산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있었던 과거의 ‘이리’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도 ‘이리’이다.

영화에서 진서는 양로원에서 일을 하는데 출연하신 분들 모두 실제 그 양로원에 다니시는 분들이었다. 촬영 하면서 그분들과 거의 촬영 내내를 함께 했는데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주민들과 양로원에 다니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통해 사건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에 이리역 폭발사고 30주년 추모 음악제가 등장하는데 이 영화가 저예산이다 보니 그런 군중씬을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에 그 추모 음악제가 열리던 장소에서 도둑촬영을 했었다.

카메라는 멀찌감치서 나를 찍고 있고 나 혼자 군중들 틈에 남겨진 채 춤을 추며 몰입을 하며 연기를 했었다. 내가 추모 음악제에 가서 춤을 추는 장면을 TV를 통해 양로원 할머니들이 보는 장면이 있다.

그 할머니들이 그 TV 장면을 보는 표정이 웃고 있는 것 같지만 우시는 것 같기도 한 야릇한 표정이었다. 그 장면을 로마에서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 다시 보니까 또 마음이 아팠다. 그 분들의 삶 속에, 표정 속에 아픔이 녹아 있는 것 같다.

6. 감독님께 질문. 한국에서 촬영하셔서 좋았던 점은?

장 : 한국의 유명한 배우들과 같이 작업을 하고 보니 그제서야 내가 감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웃음) 제작비도 적었는데 관록있는 배우들이라 NG 없이 한번에 오케이가 나니 필름도 아끼고 좋았다. (웃음)

윤 : 정말 좋았던 점이 그것 뿐인가? (웃음)

7. 윤진서씨는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좋았던 점이 있다면?

윤 : 저를 배우이기보다 그냥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해주셨다. 실제로 촬영을 하면서도 영화 얘기보다는 사는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정말 힘을 다 빼고, 영화 배우 말고 그냥 이리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연기를 했고 그 점이 정말 기존의 작품들과 달랐던 거 같아요.

8. 극 중 인물 이름을 모두 진서, 태웅으로 두 배우의 이름을 쓰신 이유가 뭔지?

장 :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나는 어떤 인물 캐릭터를 만들어낼 때 캐릭터의이름을 먼저 만드는데 참 인물 이름을 짓는 것이 힘이 든다. (장률 감독의 <망종>과 <경계>의 여주인공 이름은 모두 최순희 이다) 평소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이 된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이름을 그대로 써도 되겠느냐 물어봤다. 간혹 극중 캐릭터랑 자신이 동일시 되는 것이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물어봤는데, 둘 다 흔쾌히 승락해 주었다.

그리고 그 전에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처음에 윤진서씨에게 윤진서라는 배우가 아니고 진짜 그 사람, 30년 전, 이리에 있었던 사람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영화 안에 들어가보면,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이라도 그녀 자신의 일처럼 경험할 수 있게 되니까 배우가 아니라 그 자신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진서라는 이름이 예쁘지 않나? (웃음)

9. 감독님께 질문. 이리에서 중경까지 두 도시를 아우르면서 영화를 만드셨는데 그 두 도시를 어떻게 처음에 연결해서 영화를 찍으시게 된 것인지?

장 :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순전히 나의 문제로 인해 그렇게 된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 게 처음이니까 두려운 마음이 들고, 걱정도 되고 그랬다.

그래서 내가 잘 아는 중국에서 먼저 영화를 찍으면 아무리 한국에서 못 찍어도 절반의 실패가 되는 셈이니까 그 실패의 요인을 줄여보고자 했던 것이 첫 번째 이유. 두 번째로는 각각의 도시에 인물들이 서로 연결이 되는 장편 영화로서 보자면 폭발 이후의 도시인 이리를 처음 보고 폐허 같다는 느낌이 받았다.

처음부터 폭발 이전, 이후의 도시를 쌍으로 맞출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리에 있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와 정 반대의 도시인 중경이 떠올랐. 중경은 세계에서 인구도 가장 많고 사람들도 다혈질인데다가 도시 전체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폭발 이전의 삶이 ‘중경’ 이라면, 폭발 이후의 ‘중경’은 ‘이리’ 라는 생각이 들어 두 도시에서 촬영하게 되었다.

10. 지난 CINDI영화제에서 <중경>의 남자 배우인 샤오허에게는 감독님께서 진서 씨에게 했던 디렉션과 다르게 연기 지도를 하셨다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 장률 감독과의 작업이 경이롭다고 평을 했던데 어떤 식으로 연기지도를 하는지?

윤 : 감독님 작품을 보면 자연에 대한 영상이 많다. 하늘, 바다, 땅 그리고 진서까지 모두 다 동등한 만물 중 하나인 것이다. 그냥 나는 여기에 있는 한 존재, 그 모든 것과 동급인 존재인 거죠.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그림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함께 작업하고 나니 내가 감독님 작품의 ‘붓’이 된 느낌이었다.

연기 디렉션 또한 배우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프레임 안에서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왼쪽으로 간 다음에 2초 후에 왼쪽을 바라보고 그리고 나가라’ ‘방에 들어와서 5초 후에 불을 켜라’는 등으로 연기를 주문한다.

영화 초반인 2,3회까지는 동선과 행동이 모두 정해져 있는 것 같아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힘이 들었는데요. 나중에는 연기를 하려는 욕구를 버리고 오히려 모든 것을 비워내려고 노력한 후에는 모든 게 더 자유로워졌다.

뒷모습이 나오건 어떤 모습이 나오건 어떤 디렉션이든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점이 경이로웠다.

장 : 그리고 샤오허 그 친구는 전문 배우가 아니니까 자유롭게 연기하라는 주문을 했던 것이고 윤진서 씨는 전문 배우니까 오히려 그것을 걷어내기 위해 그런 자세한 요구를 했었다.

11.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실 관객분들에게 한 말씀?

장 :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국말로 찍어서일 뿐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한국을 담은 한국 영화임에 틀림없다. 한국 영화를 많이 지지해달라.

윤 : 좋은 영화의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한 사람 이상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리>가 좋은 영화가 맞는 것 같다.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