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High Thinking”. ‘생활은 소박하게, 생각은 고결하게’ 쯤으로 번역되는 이 말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낭만주의 시인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영국 계관시인 ‘워즈워드’(W. Wordsworth)가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해서 알려진 말이다.

▲ 맑은정치포럼 대표/정치학박사 이동우

우리나라에서는 故 리영희 선생이 즐겨 사용하였고 리 선생 평생의 좌우명이었다. 리 선생은 고향이 북한이어서 평생 북한식대로 우리가 쓰는 ‘이’씨를 ‘리’라는 성을 그대로 썼다. 그는 박정희 정부로부터는 ‘젊은이들 의식화의 원흉’으로 매도되었지만,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그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칭송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대학 새내기 시절 당시 금서(禁書)였던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그리고 백기완 선생의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등을 읽고 마치 뒤통수를 가격 당한 것 같았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1929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리 선생은 경성공립공업고, 한국해양대를 졸업했다. 그는 그 후 고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한국전쟁이 나자 통역장교로 입대해 1957년까지 근무한 후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1957년 ‘합동통신’의 외신부 기자로 언론 생활 시작한 리 선생은 1964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검토 중’이라는 기사를 써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베트남 전쟁 파병에 비판적인 태도를 고수하다 1969년 6년째 근무하던 ‘조선일보’에서 해고됐고, 1971년에는 군부독재·학원탄압에 반대하며 ‘64인 지식인 선언’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합동통신’에서 또 해직됐다. 1972년 한양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에도 1976년과 1980년에 각각 두 차례 해직을 당했다.

리 선생은 저서인 ‘전환시대의 논리’(1974)를 출간하면서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1977년 중국연구 성과를 담은 ‘8억 인과의 대화’는 출간 2달 만에 판매금지 조처가 내려졌고, 바로 이어 ‘우상과 이성’이 출간됐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분단을 넘어서’, ‘역정’, ‘자유인’ ‘대화’ 등이 있다. 주한외국인협회 자유언론상, 늦봄통일상, 심산상·제1회 기자의 혼상, 후광 김대중 학술상 등을 수상했고, 2010년 12월 5일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그의 유해는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필자가 갑자기 리영희 선생을 생각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은 마땅히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지식인은 별로 실천하지 않았다. 물론 실천적 지식인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독재와 같은 살벌하고 냉혹한 시대에는 실천하는 지식인이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리영희 선생의 존재는 각별했다.

그는 국내 최대의 언론사의 기자였고 대학교수였지만 목숨을 걸고 독재를 비판했고 정론을 펼쳤다. 박정희 시대에는 언론과 지식인에게 금기(禁忌)가 많았다. 그러나 리 선생은 박정희 독재시대의 모든 금기를 건드리고 깨뜨리는 데 앞장을 섰다. 일례로 지금도 이른바 ‘종북’의 낙인이 두려워 북한의 좋은 점을 지식인들이 말을 잘 못하는 데 이미 70년대에 리 선생은 언급을 했고, 중국을 통해 사회주의의 좋은 점과 긍정적인 측면을 알렸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전쟁의 부도덕성을 고발했고 참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어느 것 하나 함부로 언급할 수없는 민감한 사안이었지만 그는 마치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선지자처럼 용기 있게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그의 저서 ‘대화’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 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 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 왔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과 사회지도층의 천박함이 편만(遍滿)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하게 취득한 부(富)는 마땅히 인정받아야 한다. 또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권위와 명성을 소유함도 똑 같이 대우받아야 한다.

하지만, ‘땅콩 회항 부사장’, ‘벤츠 여검사’, ‘폭행 CEO’, ‘성추행 교수·군 간부’, ‘막말 판사’ 등 상식을 벗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이 사회에 대한 절망감과 참담함을 맨 정신으로 견디기가 여간 쉽지 않다.

‘지난 12월 5일은 ‘넬슨 만델라’의 1주기이기도 했지만, 리영희 선생의 타계 4주년이기도 했다. 통일과 민주주의, 인권을 주장하면 빨갱이로 매도되었던 시절에 자신의 생각을 한 치의 주저 없이 글로써 진실과 정의를 알리려 했던 실천하는 지성인 리영희 선생. 그는 양심이 있고 양식을 가진 모든 젊은이들에게 행동하는 지식인의 영원한 귀감이자 영웅이었다.

오늘 새삼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것은 비단 필자 뿐 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