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때 친구의 소개(?)로 야구의 매력에 빠진 나는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스포츠가 야구이다. 언젠가 야구의 매력에 대하여 언론사 칼럼으로 기고한 적도 있다. 내가 야구를 무척 좋아한다는 증거가 하나 있다. 선수출신도 아닌 내가 전라북도 야구협회 이사를 4년 동안 했다.

▲ 맑은정치포럼 대표/정치학박사 이동우

나의 영향으로 우리 아이들도 야구를 좋아한다. 아이들과 나는 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매일 야구중계를 보거나 야구장을 찾아간다. 아내는 야구에 빠진 나와 아이들을 조금 못마땅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하나라도 있어서 좋다. 아내도 어깨너머로 야구 배워 가끔 정확하게 작전을 지시(?)하고 훈수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야구팀은 ‘기아 타이거즈’이지만 야구 감독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은 김성근(金星根) 감독이다. ‘야신’(野神)은 한 살 위인 김응룡 감독이 붙여준 그의 별명이다. 내가 야신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 승리를 향한 그의 치열함 때문이다(사실은 나에게 부족한 그의 치열함이 부러워서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김 감독은 재일교포 2세로 1941년(74세) 일본 교토(京都)에서 태어났다. 고교 재학 중이던 1959년, 제4회 재일동포 학생 모국 방문 경기를 통해 처음으로 조국 땅을 밟았다. 고교 졸업 후 일본 사회인 야구팀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부산 동아대에 스카우트된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실업 야구팀 ‘기업은행’의 창단 멤버가 된다.

좌완 투수로 빠른 직구를 구사했던 그는 1961년 제4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때는 대한민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963년 11월 13일 ‘인천시청팀’과의 경기에서는 볼넷 1개만을 내주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친 혹사로 어깨 부상을 당한 후 타자로 전업했고, 1969년 이른 나이(27세)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바로 아마추어 지도자로 변신한 김 감독은 마산상고, 충암고, 신일고 감독, 기업은행 코치 등을 거쳐 프로 야구 OB 베어스(현 두산), 태평양(현 넥센), 삼성, 쌍방울, LG, SK(3번 우승) 등 6개 팀 코치•감독을 맡았고 현재는 7번째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다.

그의 이력 중에 특이한 이력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초대 감독이고 또 하나가 2005년 일본 프로 야구 ‘롯데 마린스’의 팀 타격 인스트럭터(특별 교관)이다. 김 감독은 당시 일본식 야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2004년 시즌에 부진에 빠져 있던 이승엽의 개인 코치를 자청하여 지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조언과 도움을 받은 이승엽은 2005년에 30홈런을 기록하며 부활하게 된다.

한국 프로 야구 감독 시절부터 선수들의 자세 변화 포착과 기술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탁월한 능력이 ‘롯데 마린스’의 1군 선수들에게도 그대로 인정되자, 2006년에 일본 롯데 마린스 구단은 그를 1·2군 순회 코치로 정식 임명한다. 이로써 한국 프로 야구 출신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일본 프로 야구 팀의 정식 코치가 되었다.

그의 타격지도를 받아 부활한 이승엽이 어제(6. 3) 포항에서 KBO 최초의 개인 통산 400호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승엽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지금의 이승엽을 만든 동력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이승엽은 “좋은 지도자를 많이 만난 덕분이다”고 말하며 김성근 감독을 이야기했다.

이승엽은 “김성근 감독님과 야구하면서 정말 내 인생에서 연습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야구가 늘었다. 힘들었을 때, 그때 잡아주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그냥 평범한 선수로 남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 감독은 “그때 참 에피소드가 많았다. 나한테 야단도 바가지로 먹은 적도 있다”며 그때를 떠올렸다. 김 감독이 이승엽에게 했던 조언 중 가장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 이승엽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너는 다른 사람의 프로세스(성장과정)를 갖고 있다. 스스로 그 과정을 만들어본 적 있느냐. 변명도, 해명도 해선 안 된다. 너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와 늘 테이블의 가운데에 있었지만 난 일본에서 한국으로 와 늘 벼랑 끝에 있었다. 남에 기대고 살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난 벼랑 끝에 몰려 있을 때 강하다. 너도 그래야 한다.”

그 이후부터였다. 김 감독 특유의 지옥의 ‘특타’(特打)가 시작되었다. 김 감독은 “이승엽을 만나고 연습과 게임 때가 다르면 연습은 뭐 하러 하냐며 야단을 쳤다. 매일 1000개씩 방망이를 쳤다. 손에서 피가 나고 난리가 났다.

그렇게 열흘 이상 하다 보니 하나 둘 홈런이 터지기 시작하더라. 남들은 경기 전 20개 정도 방망이를 치고 들어간다면 승엽이는 600~700개를 치고 들어갔다. 또 게임이 끝나고 또 스윙하고, 그런 적이 있었다”며 지옥훈련의 실체를 전했다. 물론 이승엽이 끈기 있게 이를 악 물고 버텨준 덕분이었다. 이승엽은 이후 일본 프로야구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지도자의 중요성이 요즘처럼 뼛속 깊이 저려오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야구의 신이 ‘야신’이라면 정치의 신을 ‘정신’(政神)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지금 대한민국은 백마 타고 오는 ‘정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