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갑오년 전라도 일대에서 발원하여 한반도를 들썩이게 했던 동학농민전쟁, 부패한 봉건왕조와 탐욕스러운 외세의 간섭에 저항하여 일어난 이 항쟁의 지도자 전봉준 장군을 기리는 공연이 드디어 막을 올린다.

전봉준 장군은 항쟁의 주력이 우금티 전투에서 거의 궤멸되다시피 한 1894년 12월에 몇 안 남은 농민군을 이끌고 원평, 태인 등지에서 마지막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관군과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서 정읍 입암산성과 장성 백양사를 거쳐 순창 피노리의 김경천 접주에게 다친 몸을 의탁하러 갔다가 그의 밀고로 붙잡혔다.

이후 1895년 초에 일본군 영사가 입회하는 재판에서 교수형을 언도받고 순국하였다. 올해는 곧 그가 순국한 지 두 갑자(120년)가 되는 해이다. 이 작품은 100주년 준비사업 때부터 전주를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온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전라북도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후원을 받는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동안의 항쟁 재현극들이 보여온 사실주의적 상투성을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곁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은 전봉준을 비롯한 항쟁 지도부들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배신자 김경천과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집단적 저항과 개인의 삶이 씨줄날줄로 얽혀드는 구조를 띤다.

원작은, 패배와 학살로 점철된 120년 전의 슬픈 역사를 뛰어넘어 민중들의 힘으로 녹두장군을 구출해내는 환타지적 결말을 그려 보이고 있다. 여기에 여러 장르의 예술적 성과를 압축해서 무대 위에 간결하게 뭉뚱그려내는 연출의 손맛이 깔끔하다.

전북지역에서는 동학농민전쟁 100주년이던 1994년을 전후한 때부터 전봉준과 농민전쟁의 의미를 기리는 시, 소설, 평전, 연극, 그림 등이 활발하게 발표되어 왔다.

이번 공연은 그 동안 이 지역에서 발표한 이들 작업이 모두 하나로 묶인 총체극적 성격을 띠고 있다. 원작시는 오랫동안 동학농민혁명기념 사업에 매진해온 시인 문병학이 썼고 이를 바탕으로 곽병창이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안도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과 이광재의 평전 ‘봉준이 온다’의 여러 구절이 작품의 갈피마다 배어 있으며, 민중미술 판의 든든한 기둥인 이기홍과 박홍규의 그림들이 무대의 전면을 채우며 그 날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전봉준 역을 맡은 정민영과 경천의 첩을 연기하는 방수미는 오랫동안 창극 무대에서 닦은 소리와 연기의 깊이를 보여준다. 100주년 기념공연에서 전봉준 역을 맡아 열연했던 홍석찬이 심문관 역을 맡고, 탄탄한 연기 공력의 성격배우 조민철과 전국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서형화가 경천과 원평댁 역을 연기한다.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여러 번의 전투장면은 우석대 태권도학과의 태권 퍼포먼스로 채워서 스케일과 비장미를 증폭시킨다. 허귀행 음악감독은 ‘파랑새’, ‘한오백년’ 등의 전래민요를 재해석하여 감각적인 노래들로 재탄생시켰고, 창작극회와 판소리합창단의 젊은 단원들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소리로 연극적 향연을 벌인다.

지금으로부터 두 갑자(120년) 전, 부패한 세상을 불꽃처럼 뒤흔들었던 전봉준의 삶은 마흔 한 살 짧은 나이로 멈추었다. 하지만, 지금 그 후예들의 작품에서는 영원히 죽지 않는 녹두새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 훨훨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공연은 9월 5일 저녁 7시 한 차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이다. 전석 이만 원, 문의전화는 063-232-1894 / 010-9942-1919